KBS 역사스페셜 – 임진왜란 비사! 왜군과 싸운 왜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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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귀화하여 왜군에 대항하여 싸운 일본인, '항왜'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임진왜란의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습니다.

Highlights

항왜(降倭)의 존재와 그들의 귀순
00:01:13

임진왜란 중 왜군에 대항해 싸운 왜군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조선군에 투항한 일본군들을 지칭하는 '항왜'라고 불렸습니다. 선조실록에도 그 기록이 남아있는데, 그중 '사야가', '평구루', '산영은', '사고여모'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임진왜란 중 조선에 귀순하여 조선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 숫자가 임진왜란 발발 후 5년 후에는 만여 명에 이를 정도로 많았습니다.

사야가(김충선)의 이야기
00:02:20

항왜 중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사야가입니다. 그는 1592년 조선으로 출병한 왜군 선봉부대 장수였으나, 자신의 칼날을 돌려 왜군과 싸웠습니다. 현재 일본에서도 사야가는 '모하당 문집'을 통해 잘 알려져 있으며, 그의 투항이 지닌 의미에 대한 연구도 활발합니다. 사야가는 조선에 귀화한 후 '김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고, 조선의 유교 문물과 예의를 따랐던 철저한 조선인이었습니다. 그는 임진왜란 종전 후에도 이괄의 난 진압에 참여하는 등 조선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김충선의 후손들은 현재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서 김해 김씨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 수는 약 300여 명에 달합니다.

사야가(김충선)의 투항 이유와 정체
00:17:48

사야가는 임진왜란 발발과 동시에 조선에 투항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조선 침략 전부터 투항을 결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모하당 문집'에 따르면 김충선은 조선에 귀화한 후 조선군에게 조총과 화약 제조 기술을 전수하고 조총 부대를 조직하여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이러한 단서를 바탕으로 사야가가 일본에서 어떤 인물이었는지 추적한 결과, 그는 전국시대 일본 최강의 철포 부대인 '사이가 부대'의 대장 스즈키 마고이치로였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사이가 부대는 히데요시의 지배를 거부하다 토벌당했기 때문에, 사야가는 히데요시에게 반감을 품고 있었고, 이로 인해 조선에 투항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항왜들의 발생과 투항 배경
00:33:17

임진왜란 발발 1년 후인 1593년부터 항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는 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지고 명과 일본 간의 강화 교섭이 진행되던 시기였습니다. 장기간의 전투로 왜군들은 지쳐 있었고, 식량부족과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렸습니다. 조선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항왜 유인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습니다. 선조는 항왜들의 이용가치가 높다고 판단하여 투항을 독려하고, 뛰어난 검술이나 병기 제조 기술을 가진 왜병들에게 큰 상을 내렸습니다. 임진왜란이 무모한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반 히데요시 세력이 많았고, 이들이 조선 침략에 불만을 품고 투항을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항왜들의 활약과 임진왜란 승리에 기여
00:39:02

항왜들은 임진왜란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조총 제조 기술 전수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임진왜란 초기 일본군의 조총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조선군은 항왜들의 도움으로 1년 만에 조총 생산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사야가를 비롯한 항왜들은 경상도 병영에 조총과 화약 제조 기술을 전수했으며, 직접 조총 부대를 조직하여 전투에서 활약했습니다. 또한 항왜들은 훈련도감 훈련에 참여하여 아동대와 조선 군사들에게 검술과 포수를 가르쳤습니다. 명량해전에서는 준사라는 항왜가 왜선 대장을 빠르게 알아봐 전투 승리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전투 전략 및 군사 기밀을 알려주거나 직접 전투에 참여하여 왜군을 물리치는 데 적극적이었습니다. 이러한 항왜들의 노력으로 조선은 조총을 대량 생산하고 군사 전술을 혁신하여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항왜들에 대한 포상과 재평가
00:53:02

전쟁에서 공을 세운 항왜들에게는 포상과 벼슬이 내려졌습니다. 조정은 그들을 당상관으로 승진시키고 조선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성과 이름을 하사했습니다. 사야가 김충선은 물론, 김양이, 김기선, 이의귀, 김명 등 많은 항왜들이 조선의 이름을 가지고 활약했습니다. 하지만 사야가를 제외한 많은 항왜들의 흔적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일본인임을 숨기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승리의 주원동력으로 이순신 장군의 수군이나 의병들의 활약이 주로 언급되지만, 사야가 김충선을 비롯한 항왜들의 공헌 또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조총 기술 전수와 직접적인 전투 참여는 임진왜란 승리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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